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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공용어가 영어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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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영어 사용자들의 비율>

다섯 개의 저소득 국가(파키스탄,방글라데시,카메룬,나이지리아,르완다)에서 영국 문화원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수행한 연구가 있었다.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소득률이 20%~30%가 높았다. 모국어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인구를 보면, 영어는 전 세계 5%이지만, 전 세계에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24억 명이다. 지구 인구 4명 중 1명인 셈이다. 하지만 영어가 전 세계의 공용 언어로 자리 매김한 지는 7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어떻게 영어가 공용어로 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영어가 공용언어로 자리 잡기 전 배경>

영어가 공용언어로 자리 잡기 전, 오히려 프랑스어의 뒤를 쫓는 입장이었다. 외교에서는 프랑스어가 주로 사용 되었고, 과학 화학 분야에서는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가 주요 언어였다. 1932년 국제 과학 회의의 98.5%가 프랑스 언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했고, 영어는 83.5%로 프랑스에 미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군이 국제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언어를 배우기 위해 군인들을 위한 외국어 속성 과정을 만들 정도였다.

이렇듯 1900년대 중반까지도 영어는 전 세계의 공용어가 아니었다. 그럼 대체 불과 70년 사이 어떻게 공용어가 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1943년 윈스턴처칠이 한 연설에서 “미래의 제국은 의식의 제국이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정신적인 식민화의 핵심은 언어적인 것에 있다는 믿음이다. 공용어를 쓴다고 할 땐, 여러가지 선택지 중 발전 가능성이 커보이는 언어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선택이 바로 영어 였던 것이다.

<영어가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던 주요 사건>

(1) 로마 제국의 확장

로마 제국의 팽창은 라틴어의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마가 정복한 지역에서 라틴어는 행정, 군사, 상업의 언어로 사용되었고, 이는 후에 여러 로망스어의 기초가 되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에도 라틴어는 교회와 학문의 언어로 남아, 유럽의 여러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

(2) 영국의 식민지 확장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은 대규모 식민지 확장을 통해 영어를 세계 여러 지역에 퍼뜨렸다. 인도, 아프리카, 카리브해 지역 등에서 영어는 행정과 교육의 언어로 자리 잡았고, 이는 영어가 공용어로 자리 잡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미국 독립 전쟁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 전쟁은 영어의 공용어로써의 지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립 이후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영어가 국제적인 언어로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

(4) 제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증대는 영어의 공용어로써의 지위를 더욱 강화시켰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대립 속에서 영어가 NATO와 같은 국제 기구의 공식 언어로 사용되며, 국제 정치와 외교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5) 유럽 연합의 다국적 환경

유럽 연합(EU)의 형성은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어냈지만, 영어는 여전히 주요한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공식 문서와 회의에서 영어가 널리 사용되면서, 영어의 국제적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공용어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영어가 어떻게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경제적 영향력, 문화적 영향력, 과학과 기술, 교육 시스템 등 여러 요인들이 있다.

<영어가 공용어로 형성되는 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요인 3가지>

(1) 항공분야

영어의 국제화를 만든 최초의 집단은 항공 교통 관제사이다. 상공에서 명확한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항공 분야에서 공통언어는 필수 요소이다.

1950년대 안드레이 그로미코 외무장관을 태우고 가던 구소련 비행기가 히드로 공항을 두 번이나 지나치는 바람에 추락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조종사가 관제탑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1944년 국제 항공기 시스템에 관한 규약이 체결될 때, 그 표준언어가 영어로 채택되었고 이 사건 이후로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많아졌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던 캐나다는 항공 교통 상황에서 프랑스어를 금지하기도 했다. 항공 시스템 규약에서 영어가 표준언어로 채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미국의 전 세계 여행 마일 점유율이 무려 70%에 달해서이다.

(2) 과학분야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15년만에 노벨상 수상자의 55%가 미국 대학의 연구자들이었고, 76%의 수상자들은 영어 사용자들이었다. 당시 과학자용으로 고안된 매개 언어인 ‘인터링구아’라는 것이 있었지만, 1960년대에 이르자 전 세계 자연과학 분야 출판율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발행되는 상황들이 나타났다. 비영어권 국가 출신 과학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최신 논문을 읽고 쓰려면 당연히 영어를 배워야 했다.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영어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영어 비중은 급증했고, 현재 영어 출판율의 비율은 90%가 넘게 되었다.

(3) 인터넷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바로 디지털혁명을 만든 인터넷이다. 미국에서 발명된 웹(WEB)은 영어 사용자를 위한 공간으로 급격히 기울어지게 된다. 1997년 언어 분포에 관한 한 조사에서는 무작위로 선택된 전 세계 웹사이트 중 82.3%가 영어로 되어있다는 결과가 있었다. 이처럼 영어 사용자가 인터넷을 지배한 것 뿐만 아니라, 그 인터넷을 만드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 C언어, 자바(JAVA) 모두 다 영어에서 파생되었다. 인코딩을 위해 쓰이는 ‘아스키(ASCII)’라는 코드에서, 유럽에서 자주 쓰이는 기호들은 오직 영어로만 사용해야 했다.

이렇게 영어의 세가 더해져 가면서 전 세계는 영어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가게 되었다.

<비영어권 국가들의 영어에 대한 저항>

영어의 사용화가 커져 한 때 각 나라에서는 영어에 대한 저항이 거세졌지만,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65년 국어를 힌디어로 완전히 전환할 것이라고 했던 인도에서는 수많은 광고, 고등교육, 발리우드 영화가 영어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영어가 사실상 인도의 국어”라고도 보도했다.

필리핀 역시 국민 토착어를 수립하기 위해 ‘따갈로그어’전파를 애썼지만, 영어의 공용어의 지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영어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문화,정치적으로 영어권과 거리가 가장 멀다고 할 수 있는 몽골은 2004년 몽골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제치고 영어가 제 1외국어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문화 대혁명으로 영어 사용을 탄압했던 중국 조차도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영어를 허용 외국어로 복귀시키고, 장려하기 시작했다. 언어학자인 존 맥위터는 “중국이 언젠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온다면 영어로 지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영어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

이렇게 미국은 초강대국의 자리를 ‘영어’를 통해 더욱 곤고히 하게 되었다. 미국은 세계 대부분의 소재,장비 등에 ‘표준’을 만들었고, 역사상 최대 공용어에는 영어를 등극 시켰다. 이 모든 것은 대부분 미국이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았던 미국의 ‘군부’에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수많은 표준체계도 미국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시작된 것들이고, 인터넷 역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던 알파넷(Arpanet)이 그 시초이다.

미국보다 더 센 강대국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미국의 시대는 계속되고 세계 공용어도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대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